외로움과 고독의 성질

외로움을 고독으로 초월하려는 사람은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하지 못한다.

때때로 그가 느끼는 고독은 타고난 지독한 외로움의 기만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외로운 사람이 외로워짐으로써 몰락할 때는 그것이 확연히 구별된다.

그는 추락한 낙차가 몇 cm 길이인지 혹은 몇 층 높이인지조차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외로움은 선택적이고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인 반면 외로움은 외로움이다.

고독은 특수하고 온순한 반면 외로움은 보편적이고 거칠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실재하는 한 외로움은 근본적인 존재 방식이라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낯선 사람과 긴밀해짐으로써 외로움은 감춰진다.

그러나 우리는 가슴팍에서 더 이상 차거나 뽑지 않는 일정한 높이의 외로움이라는 늪에 붙잡혀 있다.

외로움은 사람을 질식시키려 하지만 외로움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듯 은근하고 신중한 상냥한 구원도 산중의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호흡하고 그것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호흡의 질이 갑자기 떨어졌을 때 시선을 떨어뜨리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까지 영원히 존재하는 외로움의 늪이 가슴까지 채워졌음을 깨닫는다.

그때 외로움의 일정한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낙담한 자는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들이대며 자발적으로 호흡을 거부한다.

그는 웅크린 곰처럼 외로움이 덜한 바닥에 침전해 숨을 멈춘다.

어리석은 광어로 잠수하는 악어다.

구원을 호흡해도 끈질긴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극복할 수 없을까. 고독이 그 대안인가. 외로움에 익숙해져 사회에서 물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촉구하는 명령은 외로움의 늪에 잠입하는 어리석은 광어를 양산하는 위험한 발언이다.

외로움은 원래 외로움이고 외로움 속에서 인간은 숨을 쉴 수 없다.

그것에 익숙해지라는 것은 접시의 물에 코를 찔러 자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부추기는 것이다.

우리는 늪을 침투할 수 없고 단지 표면에서 풍부한 산중의 안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중의 안개는 변칙적이고 유한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산중의 안개는 햇빛의 농도와 바람의 세기와 방향으로 결정되는 가변적이고 우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관계 구원에 매달릴 때 공허해진다.

늪지를 드리운 안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설사 호흡은 할 수 있어도 가슴이 막히고 답답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일 잎에 아침 이슬이 맺힐 것도 예상할 수 없어 그는 그 자체가 안개가 된다.

우연하고 불규칙한 상태에 자신의 존재를 통합한다.

그는 우연이고 불규칙한 생활을 해서 무릎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안개 없이 무게는 상승시키지 않고 가라앉힌다.

그는 서서히 늪으로 빠져든다.

고독은 이러한 외로움과 산중 안개의 성질을 이해하고 납득하는 태도이다.

외로운 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우연히 드리운 안개 속에서 자발적으로 호흡을 멈출 수도 있고 긴 호흡을 할 수도 있다.

안개가 끼면 그는 자신의 가슴이 오르내리고 늪지를 조금씩 당겨 밀어내는 것을 감각한다.

그에게는 늪도 안개도 아무것도 아니다.

늪과 안개는 늪과 안개로 존재할 뿐 그가 살아가는데 필연적인 것일지라도 필수는 아니다.

고독은 태풍이 치는 강변의 버드나무 잎이며 늪지에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이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극복한다.

고독은 산중의 안개에 가시지 않는 고독은 희미해지기는커녕 그곳에서 가장 뚜렷하게 존재한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명확해진다.

그러나 외로운 자가 늪지대에 웅크리고 마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그는 어리석은 광어도 잠수하는 악어도 아니다.

그는 발견한 것이다.

늪지대의 바닥에 이 모든 사태를 흡입하는 배수구가 있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존재 양식까지 질식시키면서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기도 하는 안개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슴까지 채워진 늪에 답답하지도 않다.

그는 찰나의 행복과 영원한 어둠마저 극복하기 위해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가 해결하려 했던 태초부터 존재 양식은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무의미하고, 그의 시체의 질량은 늪지를 조금 더 차갑게 만든다.

그가 흘끗 본 배수구의 희망이 순간 빛을 발하며 다시 닫힌다.

그렇게 늪지는 그가 가득 찬 만큼 다시 차분해진다.

늪은 이렇게 조성되어 항상 일정하다.

외로움이 극복되더라도 다시 외로움에 복종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고독은 극복의 대안일 뿐 그 자체는 극복할 수 없다.

외로운 사람은 그 자체가 늪이 된다.